[아르떼 칼럼] 아마추어 발레리나의 '간절함'

입력 2024-03-29 17:54   수정 2024-03-30 00:48

직업이 대학교수이다 보니 무용 콩쿠르 심사를 맡아달라는 제안을 심심치 않게 받는다. 특별히 일정이 겹치지만 않으면 요청을 받아들이는 편이다. 심사석에 앉아 참가자의 춤을 보고 있자면 참으로 많은 생각이 든다. 어린 학생들의 춤을 보다 보면 그 아이들의 실력뿐 아니라 천진난만한 모습에 절로 미소가 지어질 때가 많다. 중·고등학생들이 춤추는 모습을 보면 자연스레 내가 발레를 시작했던 시절이 떠오르는데, 예전과 요즘 학생 간 실력 차이가 느껴져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근래 예전과는 다르게 무용 경연대회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참가자 부류가 있다. 바로 ‘비전공자’들이다. 그들의 경연 순서는 주로 경연의 가장 마지막쯤이다. 장시간 집중을 요하는 것이 심사인지라 대회 말미에는 꽤 피로한 상태지만 이들의 춤을 유심히 지켜보게 된다. 마치 식사 뒤 맛보는 디저트를 기대하는 마음처럼. 나에겐 그만한 이유가 있다. 바로 전공자의 춤에서는 잘 느낄 수 없는, 다른 무엇인가를 그들의 춤에서는 다양하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보통 심사표에는 참가자의 참가 번호와 작품 제목 말고는 거의 기재돼 있는 것이 없다. 쉬 단정할 수는 없겠지만 비전공 참가자 중엔 젊은 층 외에도 나이가 제법 들어 보이는 30~40대, 심지어는 50대처럼 보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한 사실은 비전공자들이 전공자보다 동작이 마음에 와닿고 리듬을 더 잘 타는 것 같다고 느끼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있다는 사실이다. “이거다!”라고 할 이유를 찾지는 못했지만, 내 나름대로 추론이 있긴 하다. 바로 ‘간절함’이다.

간절함이라는 단어만큼 누군가를 변화시키고 감동하게 할 수 있는 단어가 또 있을까 싶다. 한때 전공했든, 아니면 어느 날 갑자기 매력을 알게 됐든 간에 비전공자들에게 발레는 전공자들이 생각하는 발레와는 또 다른 의미인 것은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런 몸매와 실력으로 많은 시선을 한 몸에 받는 무대에 올라 몸에도 익지 않은 어색한 동작들로 사람들 앞에서 춤을 출 수 있단 말인가. 그것도 웃는 얼굴로….

전공자인 나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불가능한데, 그들은 자신이 가장 순수한 시골 처녀인 양,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난 공주인 양, 자신만의 감정을 흐르는 음악 선율과 역할 속에 온전히 내맡겨 버린다. “도대체 발레가 뭐길래, 발레의 어떤 부분 때문에 저들은 발레를 할까?”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평판 따위는 개나 줘 버리라는 듯한 모습이다.

보통 경연에서는 솔로로 춤을 추는 시간을 2분으로 제한한다. 어쩌면 그래서이기 때문일까? 2분도 채 안 되는 그 짧은 솔로 공연 속에 자신만의 이야기를 담아 호소하는 듯 춤을 춘다는 느낌을 자주 받는다. “캐릭터 속 인물을 해석해서 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캐릭터 속 인물을 넘어선 진정한 너 자신을 추는 것”이라고 지도하는 학생들에게 자주 말한다. 바로 그것이 비전공자들은 2분이라는 그 짧은 시간 속에서 너무도 자연스럽게 자신을 드러내는 춤을 추는 이유가 아닌가 싶다.

춤에 대해 가장 순수했고 가장 솔직했던 순간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리저리 치이며 살다 보니 그 소중했던 순간과 마음가짐은 이내 조금씩 잊히고 있었다. 하지만 경연의 마지막쯤에 비전공자들의 춤을 보면서 잃어버린 나에 대해 생각하고 다시 바라보는 예상 밖 경험을 하게 된다. 전공자든, 비전공자든 발레를 사랑하는 이 세상 모든 이에게 내가 전할 수 있는 최고의 사랑과 존경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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